부모가 자녀를 만든다는 믿음은 가설에 불과하다

이김편집실Leave a Comment

“번역한 책을 소개하고 출판을 의뢰하고자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출판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투고 메일을 받았다. 직접 쓴 책도 아닌 번역서였다. 도대체 뭘 보고 이런 얼뜨기 같은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을까. 그래도 작은 출판사에게 투고 이메일은 반가운 일이다. 일단 우리 출판사를 알고는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대학교 발달심리학 수업에서 이 책을 접하고 충격을 받은 번역자 선생님은 직접 책을 번역하기로 했다. 주위 심리학 대학원 전공생들한테서 보여달라고 부탁받는 일이 워낙 많아, 이번 기회에 책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투고를 결심했다고 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가설The nurture assumption>은 1998년에 처음 발간되었고, 2009년 개정되어 나왔다. 스티븐 핑커의 극찬을 받았고 (우리가 검토하는 시점에서) 총 2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방대하고 견고한 증거를 들어 “한 사람의 성장에 부모는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이 주장은 부모에게는 책임감을 덜어주고 자식에게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국내에서도 발달심리학 또는 교육을 연구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책이었다. 그의 두 번째 책인 <개성의 탄생No two alike>(2006)도 2007년 동녘사이언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이 나올 당시 미국에서는 찬사와 비난이 쏟아졌다. 프로이트를 필두로 우리가 당연하게 믿고 있던 발달에 대한 신념(앙)을 타협의 여지없이 깨부수는 주장에 학자들은 물론 부모들도 강력하게 저항한 것이다. 하물며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녀의 삶에 깊게 개입하여 자녀의 삶에 대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부모보다는 또래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부모가 영향을 당연히 미치지만 누군가의 영향을 받기로 결정하는 데는 아이 자신의 주체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는 어린이집 4세반을 비롯해 계속해서 다른 집단을 만나고, 직접 또래집단을 선택하고 그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사회화한다. 아이는 부모와 분명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의 부분집합은 아니기 때문에,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만들어갈 수는 없다. 아이들은 부모의 꿈을 투사할 캔버스가 아니다. 아이와 부모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지금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최우선이다.

혈연과 가족주의가 매우 강력한 기제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저자의 주장이 지나치게 논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시나브로 양육 문화를 바꿔가자는 마음으로 큰 욕심 없이 책을 냈는데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셨고 또 주목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이와 김은 편집자로서도 한 단계 발전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른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김도 제대로 된 책(?)으로 승부를 건 것 같아 보람되다. 이제 이김의 책 목록에는 다섯 종의 책이 올라가 있다. 우리의 모토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세상이라는 호수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 던지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겠다.

-[출판저널] 503호 편집자 노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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