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가설> 저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 부고기사

이김편집실Leave a Comment

이 글은 <뉴욕타임즈>의 부고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링크 https://www.nytimes.com/2019/01/01/obituaries/judith-rich-harris-dies.html

부모의 부담을 덜어준 책의 저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 80세의 나이로 사망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사진. 그는 아동발달 이론으로 주목받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부모의 영향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캐서린 Q. 실리
2019년 1월 1일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아동 발달에 관한 대학 교재를 쓰던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자라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이 독자들에게 해온 말을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이론은 독창적이다. 아이들은 부모보다 유전자와 또래들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혁신적인 발상이었으며, 많은 심리학자들과 부모들의 믿음에 반하는 것이다. 그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고, 미국심리학회로부터 저명한 상을 받았다. 

뉴저지의 미들타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지난 토요일에 사망한 해리스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받지도 못했고, 학술적인 글을 계속 쓴 것도 아니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뉴저지 출신의 할머니”에 불과하다며 해리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해리스는 다른 여러 사람들의 격려를 받아 자신의 연구를 책으로 펴냈다. <양육가설>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언론에서도 화제를 일으켰다. 

<양육가설>에서 해리스는 자녀를 키우는 데에 있어 부모의 역할이 자기들의 생각만큼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초보 부모들과 죄책감에 사로잡힌 어머니들을 괴롭히는 많은 질문들, 예컨대 어머니가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기고서 일을 계속하다가 아이를 망치면 어쩌나 하는 질문들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해리스는 주장한다. 아이가 보육 시설에서 지내는지 엄마와 함께 집에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의 유전자와 사회 집단이다. 

1994년의 어느 날 심리학 논문을 읽는 동안 해리스를 찾아왔다는 그 핵심적인 통찰은 바로 청소년은 어른을 흉내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다른 청소년들을 흉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십대 아이가 어른처럼 되고 싶어 한다면 뭐하러 화장품 가게에서 매니큐어를 슬쩍하고 육교 기둥에 스프레이로 괴상한 낙서를 하겠는가? 청소년이 정말로 ‘어른의 지위’를 원한다면 빨래 정리나 세금 계산 따위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어른의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청소년은 어른을 닮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과 자기를 구별하려는 것이다.”

해리스가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넓은 시야를 갖게 됨으로써 논문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교재 집필자로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대학에 소속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큰 규모의 연구를 실행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는 관련 문헌에 깊이 정통해 있었다. 

“해리스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어요.” 해리스의 주장을 옹호했던 심리학자이자 저자이기도 한 스티븐 핑커는 전화 인터뷰에서 말한다. “해리스의 탁월함은 행동유전학의 기술적인 면을 파악했으면서도 동시에 심리학자이기도 했고 또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날카로움도 지녔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핑커는 말을 이었다. “또한 해리스는 타고난 리얼리스트였어요. 부모 자식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하지만 진부하고 틀에 박힌 관점들을 거부한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감성에 빠지지 않은 태도를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해리스의 책은 전국적으로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글이 가독성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현대 미국인들의 삶에서 신성시되는 ‘최적의 아동 양육’이라는 영역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뉴스위크는 표지에서 이렇게 물었다. “부모는 중요한가?” 해리스는 대답한다. 부모는 물론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최소한 부모의 존재가 전제된 맥락에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행동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와 아이가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해리스는 부모보다도 유전자와 또래들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의 말은 자기 부모가 아니라 또래를 닮는다. 청각장애인 부모의 자녀는 어려움 없이 말하는 법을 배운다. 입양된 아이들은 지능, 기질, 성격에 있어 양부모를 닮지 않는다.

해리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당신은 자녀를 완성시키지도, 파괴시키지도 못한다.”

해리스의 이론은 학계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해리스의 이론을 무시하더니 나중에는 비난을 하거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해리스는 박사학위 과정 중에 하버드에서 쫓겨났던 특이한 학생이었다. 1960년에 해리스를 쫓아낸 통보 편지에는 하버드대학 심리학과의 학과장이었던 조지 밀러의 서명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귀하가 우리의 전문가상에 걸맞는 실험심리학자로성장할 거라는 데에 상당한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밀러 박사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아이러니는, 해리스가 1998년에 미국심리학회로부터 받았던 그 저명한 상이 바로 밀러 박사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는 점이다.

해리스는 2006년에 발표한 책 <개성의 탄생>에서 부모의 영향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더 발전시켰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심리학계의 주류는 여전히 해리스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스티븐 핑커는 말한다. “해리스의 이론이 논박된 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리스의 주요한 발견들은 풍부하게 재생산되고 있지요.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해리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만든다는 생각은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어요. 그래서 해리스의 메시지가 그 속으로 침투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1938년 2월 10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샘 리치 해리스는 말하자면 사업가였고, 어머니 프랜시스는 가정주부였다. 해리스의 아버지는 척수에 염증을 일으키는 ‘강직성 척수염’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었다. 해리스 가족은 1940년대 중반에 투손에 정착했는데 이는 그곳 날씨가 아버지의 병에 부담을 덜 줬 때문이다. 

해리스는 투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애리조나 대학을 잠깐 다닌 후에 브랜다이스 대학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1959년에 심리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으며, 후에 파이 베타 카파회(미국 대학 우등생들의 모임)의 멤버가 되었다. 해리스는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 과정에서 쫓겨나기는 했으나 1961년에는 결국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해리스는 하버드에서 역시 심리학을 공부하던 찰스 해리스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61년에 결혼했으며 그후 해리스는 M.I.T.에서 수업 조교로 잠시 일했고 펜실베니아 대학에서도 연구 조교로 일했다. 

슬하에 두 딸 노미와 일레인을 둔 이들 부부는 뉴저지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23년간 벨 연구소에서 근무했는데 아내 주디스 해리스는 연구 조교였고 남편 찰스 해리스는 기초 연구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해리스의 두 딸 중 하나가 입양아였으며 그 딸이 험난한 청소년기를 겪었다는 점을 보면 해리스가 부모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는 이론을 세운 이유가 그저 자신의 책임없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해리스의 지지자들은 그의 이론이 다양한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으며 그러한 비난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1977년부터 해리스는 신체기관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성적 자가면역질환을 앓았다. 그 질환의 심각한 합병증 중 하나는 폐동맥 고혈압으로 알려진 심장-폐 관련 질환인데 해리스는 2002년에 이 질환을 진단받았다. 전화 인터뷰에서 해리스의 남편은 해리스의 사망 원인이 이것 때문이라고 보이지만 확실한 사망 원인은 분명치 않다고 답했다. 

남편과 딸들 외에도 해리스는 형제인 리처드와 네 명의 손자들과 함께 고통스러운 시기를 견뎌냈다. 

해리스의 삶은 병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완전히 집 바깥 출입을 못하게 된 것이다.

<양육가설>에서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 교재를 쓰기로 한 건 그나마 그게 집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해리스를 지도해준 사람도, 해리스가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거의 이메일만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친밀한 동료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그는 왕성하면서도 날카로운 관점을 담아 편지를 주고받았다. 

해리스는 자신의 이론이 자녀를 나쁘게 키울까 봐 안절부절 못하는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를 바랐다. 그는 또한 장성한 자식들에게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조언하면서 책을 이렇게 끝맺는다.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든 부모를 탓하지는 마라.”

번역 : 최수근 (양육가설 한국어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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